19990406

19990406

내가 편지를 좋아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두고두고 다시 읽어볼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 편지를 쓸 때는
한참이 지난 후에 다시 읽혀질 때를 생각해봅니다.

새벽 1시반, 00이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혹시나 했지만 곧바로, 한참이나 망가진 목소리가 건너편에서 들려옵니다.
'자다가 일어난 모양이지?!'
'그래도 반가울까?'
그렇게 몇마디 하고는 전화를 끊습니다.

이제 우리는 밤 10시 정도에도 서로에게 아무렇지 않게 전화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는 것도 역시 아무렇지 않게 되었구요.
'물론 여전히 나는 아무렇지만...'
우리는 거의 매일 만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에게 너무 익숙해져 갑니다.

우리가 사귄 지는 겨우 3주가 조금 지났을 뿐입니다.
그 짧은 시간동안 우리가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지는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혹 서로를 강요하지는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00이의 말대로 너무 가학적이지는 않았는지...

요즘 00이는 내게 높임말보다 더 많은 반말을 해댑니다.
이제 내가 좀 만만한가 봅니다.
전 솔직히 그런 00이가 좋습니다.
00이의 반말 속에는 더 많은 애정이 묻어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시골 노친네의 친근한 욕지껄이처럼 말입니다.

우리가 사귄 지는 겨우 3주가 조금 지났을 뿐입니다.
그래서 아직은 두려움이 앞섭니다.
'혹 달아나지나 않을까?'
'또다시 아픔이 되지는 않을까?'
물론 00이를 힘들게 하는 생각인 줄은 알지만 솔직히 아직은 그렇습니다.
나는 역시 너무나 솔직한 놈입니다.

아마 6월이 시작될 무렵에는 이런 두려움이 사라질지도 모를 일입니다.

나의 이런 말들이, 나의 이런 행동이
00이에게 절대 부담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냥 편한 만남 속에 서로를 알아가고
그 속에서 문득 닮아가는 서로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소박한 사귐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빨리 달아오른 불길은 그만큼 빨리 꺼지기 마련이니까요.